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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아픔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남한산성 탐방기
  • 기사등록 2021-07-24 14:33:00
  • 기사수정 2021-07-24 14: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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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은 서울과 경기도 광주 성남 하남지역에서 가까운 경기도립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있는 곳이다. 도심 근교에 산행과 트레킹을 즐기고 아름다운 까페와 먹거리음식들이 풍부한 곳이라 아름답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남한산성을 방문할 때 마다 좋은 추억을 쌓기에 시간이 부족하였다. 


남한산성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였던 터였으나 이번 탐방의 기회로 산성의 성곽길과 암문 높게 축성된 성과 주변의 사찰들을 세심히 둘러보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피할수 없었던 아픔을 떠올려 보니 새삼스런 감회로 마음이 무거웠다. 지난 과거역사의 희비가 어디 남한산성 한 곳 뿐이랴 싶었지만 그토록 아름다운 산성에 민족의 아픔이 서린 역사의 흔적들을 다시금 새겨 볼 수 있는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좀 더 성숙한 방문자의 가짐을 다짐해 본다.


남한산성 탐방기


"조선 시대의 아픈 역사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그 곳" 

 

남한산성은 서울과 경기도 광주, 하남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산세가 완만하거나 가파른 산등성이와 계곡도 있어 다양한 연령층이 등산과 트래킹하기에도 좋고 오래된 사찰과 성벽을 따라서 걷기도 좋습니다. 음식점들도 많아 주말에 산행을 하는 이용객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해발 4.8㎢인 청량산을 주봉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 동쪽으로는 망월봉과 벌 봉이 있고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석축을 쌓아놓은 산성입니다. 전체면적은 35.1㎢로 광주61.2%(21.5㎢), 하남 25.1%(8,8㎢), 성남 13.7%(4,8㎢)달합니다.


남문쪽 이정표

남한산성은 북한산성과 함께 수도 한양을 지키던 조선시대의 산성이었지만, 원래 신라 문무왕 때인 673년경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이 지금의 남한산성의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이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은 후금의 위협이 고조되고 이괄의 난을 겪고 난 인조 2년에 공사를 다시 시작하여 인조 4년 때 입니다. 남한산성은 본성과 옹성, 외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본성은 동문 서문 남문 북문의 4개의 성문과 11개의 암문이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 남문로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입니다.

 

7월의 남한산성 가는 길은 정말 무더웠습니다. 구슬땀을 흘리면서 산성을 오르다가 청나라에 함락되던 때의 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청나라 군대가 성 밖을 완전봉쇄하고 포위한 상태 

에서 항복할 것인지, 결사투쟁 할 것인지를 놓고 조정대신들이 목숨을 걸고 논쟁하던 모습은 삶과 죽음의 경계처럼 두렵고 떨렸을 것 같습니다.


남문 루

암문: 성 안쪽에서 본 모습

우리 민족의 한이 그대로 서려있는 남한산성을 면밀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조시대로 돌아가 청나라 군대에 항쟁했던 곳이 지금까지 어떤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남한산성에 들어서면 지화문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커다란 성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성문은 산성 남쪽에 위치한 남문이며, 산성에는 적에게 노출이 되지 않도록 비밀통로를 만들어 놓은 것이 많은데, 이것을 암문이라고 부릅니다. 암문은 성인남자 키 높이와 폭도 한사람 정도 빠져 나갈 수 있는 크기입니다.


남문 또는 지화문

남문 옆에는 흥선대원군 대감 영세불망기 비석, 유수겸수어사 비석, 영의정 심상규 비석 등이 많이 세워져 있어, 조선 시대의 역사가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 김훈이 2007년 발표한 소설`남한산성`에는 조선시대 인조와 신하들이 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상태에서 47일간 버티다가 마침내 항복하고 삼전도에서 굴욕을 겪은 이야기가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남한산 정상은 수어장대보다 높아 남한산성의 서쪽내부와 동쪽성벽이 훤히 내려다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병자호란 당시 이 지역을 청나라 군대에 빼앗겨 적이 성 내부의 동태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고, 화포로 성안까지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하는 수없이 인조는 무조건 항복을 하였던 것이라고 합니다.

국청사 들어가는 대문

외에도 산성내 사찰이 모두 10개가 있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것은 4개의 사찰입니다. 이중 동문 안 쪽으로 매우 가파른 산등성이에 비구니승이 살고 있는 망월사와 가가이 동쪽 성곽 깊은 숲속에 장경사가 있으며  남쪽 성곽 안쪽으로 옥정사가 남았습니다. 장경사는 병자호란 당시 충청도 출신의 승병들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하며 경기문화재자료 제 15호에 지정된 사찰이기도 합니다. 


장경사

망월사

남한산성에는 향토음식점들과 분위기 좋은 까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 펜데믹 상황이라 방문객들이 북적이지 않고 한산한 분위기였습니다. 남한산성에는 아주 유명한 빵집이 있기도 합니다. 줄을 서 기다려도 그날 판매 할 빵이 매진되어 구입할 수 없기도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가장 맛있는 블루베리맘모스 빵을 샀습니다. 


빵집

남한산성은 조선시대 유사시를 대비한 임시 수도로서 임금이 거처할 행궁과 종묘와 사직까지 갖춘 군사행정도시이며, 임금과 신하뿐 아니라 백성들도 수 천 명이 기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에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로 등재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찬찬히 남한산성을 둘러보니, 산성의 구성규모와 역사적 배경 등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유네스코등재 기념비

그전에는 특별한 역사적 의식 없이 몇 번 다녀왔지만, 이번 기회에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을 테마로 해서 남한산성의 면면을 살펴보니 민족의 한과 혼이 맺혀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임금인 인조의 슬프고 안타까운 역사의 흔적과 우리 선조들이 셍과 사를 넘으며 흘리던 고통과 신음이 남아있는 산성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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